17세기 급속도로 인간의 인식지평이 넓어져가면서 여태까지 서로 존재만을 인식해오던 세계의 초상학 학문도 물리적인 형태로 교류를 갖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서로 간에 일어난 정보교류의 결과물들은 당시 최강국이었던 영국의 유통망을 통해서 런던으로 모여들게 되는데 이를 새로운 유흥에 눈을 돌리던 일부 귀족들이 지원하게 된다. 영국 왕실이나 유력 귀족가들은 애초에 이런 초상학에 대해서 깊든 얕든 어느정도 알고 있었으며 여기에 대륙계 귀족들이 참가하면서 초창기 의회가 설립된다.
이 시기의 의회는 의회라기보다는 학회나 대학에 가까운 느낌으로 학술토론을 위한 장소 제공 및 신규 입문자에 대한 지식 제공 정도에 불구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제국주의 시기와 맞물리면서 각국에서 쏟아져 오는 초상학 범죄자나 고위급 초상학 인사에 대한 관리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살롱 분위기의 의회에서 본격적인 국제기구로 바뀌어 나가게 된다.
여기에
원류4학이라고 불리는 초상학의 메인스트림을 일으킨 단체들이 참가하여 이름을 올리게 되자 이들을 기념하여 상징적인 4위를 부여하는데 후일 이게
사대사좌로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