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화 및 거대화 시킨 항공전병기로써의
익스클레이브라고 할 수 있으나 당초의 목적도 이와 같았는지는 불명이다. 개발 당시의 연혁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다음과 같다.
2000년대에 들어서 미국은 전면전이 아닌 저강도분쟁과 다양한 시가지 및 복합상황 하에서의 병력운용을 강요받게 되었다. 비단 미국뿐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NATO, 이스라엘 등 군사강국 등은 늘어나는 테러와 IT기술로 인해서 이러한 상황에 접하게 된다. 이 당시 미국과 세계 정세는
배경세계관 참조.
결국 선진군사강국들은 전면전에 대한 대비보다는 surgical strike 능력이 강한 형태로 기갑과 항공전력을 강화하게 된다. 이 시기 한국과 북중국 정부에 의해 일어난 라오닝성 전역, 이른바
1차 한중분쟁에서 이러한 정밀타격능력은 집단군 단위의 교전에서도 효력을 발휘한다는걸 여실히 보여준다. 또 비공식적으로는 이 전쟁에 참여한
정오와
아인 등으로 인해서 특수전력 혹은 게릴라와 암살용으로
초상학이 매우 유효하다는걸 각국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몇년 뒤
초상혁파가 일어난다. 이미 이 전부터 항공 및 기갑, 포병 전력의 소형화, 정밀화, 무인화를 꾀하던 미군은 이 신기술의 (세상에 드러난) 유일한 소스 제공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정부와 접촉하여 이 기술을 새로운 형태의 기갑에 응용하기로 한다. 기술의 적용에 있어 미국은 곧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데 초상학 여기서는 술리학이 되지만, 이는 반드시 유인화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무인으로
술법을 난사하거나 술법에 방어를 의존하는 형태의 병기에서 병사들이 탑승 혹은 옆에서 보조하는 형태로 가고 떨어지는 영력 전달률을 최대한 메우기 위해서 인간형에
가깝게 만들게 된다. 이게 몇가지 큰 단점을 안고 있지만 기신이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족보행에 머리가 달린 형태로 제작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이 시기 미국의 기신은 엑소슈츠나 비전투 환경에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다목적 술법기에 가까웠고 개발진척 역시 실험실의 연구용 수준이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이정 개인의 출자와 연구에 크게 의존하긴 하지만 기신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종언전쟁 시기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기신과 전투기 혹은 다른 기갑과의 차이점은 주전력이 영력구동한다는 것, 그리고 기동을 하는데 있어서 기체 주변의 권역을 지배 혹은 제어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은 초기적인 형태의 기신을 제작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개인의 연구에 지나지 않았던지라 양산을 염두에 둔 퍼포먼스를 갖췄다거나 군용으로의 설계에 미흡하였다.
기신이 본격적으로 다시 연구에 불이 붙게 된 것은
술재의 밤이 일어나고 나서 초상학 자료들이 세간에 퍼지게 된 이후였다. 연금술을 이용한 연금공학을 통해서 (영력이 통하는 한) 매우 가볍고 방탄성이 높은 소재를 얻게 되고, 동시에 ECD를 이용한 영력전달 기술이 기존보다 몇배로 상승되어서 이제 단순한 기갑이 아닌 인간의 몸의 확장으로써 영력사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출산저하로 인한 군 인원 감소와 갈수록 교묘해지는 시가전과 게릴라전 양상이 또한 한 몫하게 되었다.
라오닝성 전역, 만주전쟁(
2차 한중분쟁)의 허베이성 기습작전, 5차 중동전쟁의 예루살렘 사건, 러시아 연방 독립전쟁 등에서 전면적으로 등장한 소수의 술자들은 단시간이나마 총탄과 맨패즈에 대한 방호능력을 갖추고 역으로 보급이 필요없는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세계의 군사전문가들의 흥미를 끌게 되었다.
위 사건들은
술재의 밤 이전 시절의 구형 전쟁에 속하지만 초상학이라는게 일반적인 사회에 섞였을 때의 파괴력과 파급력에 대해서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또 이 당시에는 흔히
기사技士라고 불리던 라이너들은 없었지만 강력한 술식을 구사하는 초상능력자들이 아직 살아있었다.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각 나라에서는 새로운 ROC를 제시하게 되었다.
- 시가전에 대응할 수 있는 컴팩트한 사이즈와 방어력
- 병사의 수송이나 탑승이 가능해야하며 근처의 데이터망을 통한 통합전투정보처리가 가능
- 적 초상능력자에 대한 제거능력과 방어능력
하지만 아쉽게도 이 ROC에 대응하는 병기 체계자체의 개발속도보다 개인단위에서 초상능력에 대한 대응능력이 급속도로 상승되었다. 이는 초상능력이라고 하는 체계의 단점인데 시가전에 사용될법한 정밀한 타격능력과 유도능력을 갖춘 무기를 만드는 것보다 그러한 체계로부터 도주, 미리 대비하고 있다가 막아내는 형태의 술식이 훨씬 효율적이나 이론적으로 유리하였다는 점에 기인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대응능력의 영역에 속하는지라 완전한 방호능력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고 어느정도 시간을 벌고 상대가 화력을 발휘하기 전에 제거한다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매우 귀한 고급인력인 초상능력자와 지휘관이 소모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또 상술하였다시피 수십년간 이러한 새로운 무기체계 개발에 선도역할을 하였던 미군의 경우 인적 자원의 소모를 견디지 못해서 차츰 무인화를 채택하였고 작중 시기에서는 이를 어느 정도 이루었기 때문에 인적자원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에 있어서 개발과 운용에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으나 독일, 이스라엘, 한국과 같은 모병제 국가는 이러한 병기체계 운용에 있어서 비교적 우위에 서 있었다.
반대로 독일은 별다른 걸출한 초상학파와 학자가 없었으며 이스라엘은 전투에 응용이 어려운 카발라와 유대교 비술만이 있는 상태였다. 한국은 이정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초기에는 상당히 앞서나갔지만 이윽고 프로젝트의 중추 인물들이 '명가죽이기'에 휩쓸리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탄 숙청이나 파워게임에서 밀려서 실각하게 되고 그 후의
술재의 밤으로 인해서 '
이정'을 위시로 한 고위 초상학자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난관에 부딪힌다.
방어하는 입장인 정규군과 다르게 게릴라의 경우 이러한 정규체계와 상관없이 테러와 국지전에 활용하면 되는 경우라서 사정이 달랐다. 방어능력이 갖춰져있다고 하여도 정규전과 다르게 비정규전에서는 기습과 테러의 형태를 통해서 얼마든지 피해를 줄 수 있었고 소수의 인원만으로 제어를 신경쓰지 않는 술식의 폭주나 유폭을 야기하는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단이 되었다. 정규군 또한 이들과 전투를 하면서 적어도 방어와 탐지 술식, 비정규전 형태의 시가전에는 상당히 능숙해 질 수 있었다.
이러한 제반사정을 바탕으로 미군과 한국, NATO가 수정한 ROC는 이렇다.
시가전에 대응할 수 있는 컴팩트한 사이즈와 방어력
- 병사의 수송이나 탑승이 가능해야하며 근처의 데이터망을 통한 통합전투정보처리가 가능
- 원거리에서의 적 초상능력자에 대한 제거능력과 방어능력
- F-35에 준하는 기동능력
본디 시가전에 대응하는 인간보다 조금 큰 크기의 다목적 범용지원기를 요구했던 것에서 선회하여 적 종심에 대한 타격 능력과 지속적인 교란능력을 추가한 제공기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존의 전투기 등과 비교우위가 없지 않나 싶지만 이를 위해선 하술하는 비교문단을 참조하자.
우여곡절 끝에 미군과 NATO는 지상과 항공 두가지 형태를 혼재하여 사용하고 한국은 오로지 항공형만 사용하게 된다.
먼저 미군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강화장갑복 기술의 발전도상에서 지상형의 기신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이게 초기의 '움직이는 보병용 진지+포대' 개념의 XMD 이다. 미군이 후기 ROC와 별도로 초기 ROC에 가까운 이런 포대 개념의 기신을 운용하게 된건 당시
미군의 편제가 인력과 예산의 문제로 감축하게 되면서 충분한 화력이나 공병과 같은 전투지원능력이 모자란다는 의견에 의해서 나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온 XMA 04는 전고 약 6m, 폭 4m, 전장, 2m에 4개의 팔을 가진 2족보행기체이면서 추가로 배면에 2개의 다리가 더 있어서 다족보행이 가능하도록 되있었다. 대대지원병기로 취급되며
아라크네 패키지를 포함하여 장갑차의 속도에 맞추어 기동, 전선에 다다라서는 적 방어진지에 강력한 화력을 퍼붓으며 보병의 방어막이 되고 동시에 진지를 만드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기체는 아무래도 초상학 응용이 덜 되있던 상태라서 방어에 취약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그리하여 최초 투입되었던
원산 상륙전에서 중국의 선진 반기갑 여단에 투입된 12기가 모두 초기 2,3발의 대전차 미사일에 부서지는 수모 끝에 플랜을 수정한다.
한편 한국은 지상운용을 포기하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XKD를 롤업한다. 이정이 최초에 제시한 개념대로 활동권역 자체를 지배하여 정숙성과 기동성을 확보한 이 기체는 최초 예상과 다르게 저고도에서의 기동성 또한 갖추고 있었다.
즉 미군이 생각하고 있던 강화된 장갑차라는 개념과 다르게 비행이 가능한 전차나 육상에서의 전투기 개념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ROC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한국에서는 가격을 도외시한 ECD 이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또한 방어능력에 있어서도 익스클레이브를 골자로 하여 피탄시에는 최대한도로 방어하나 기본적으로 술식을 이용하여 전자전의 형태로 자신을 보호하고, 고속으로 이동하여 락온 되기 전에 먼저 기동하여 먼저 부순다는 걸 목표로 하였다.
이렇게 양국의 기술력이 합쳐져서 나온 최초의 기신은 XMD 08로 한국군과 개발진이 제시한 ROC와 다르게 미군에서는 여전히 보병과 동반하는 방어요새 겸 이동포대를 선호하였다. 자연히 장갑을 더 붙이게 되고 그로 인해서 이동속도가 떨어지고 그 떨어지는 만큼 추가적인 무장과 함께 보병수송능력까지 갖추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윽고
신의주 결전에서 최초로 선보인 이 XMD는 강력한 중국-러시아 연합군의 기갑 전력과 비교하면 단위화력이나 살상면적에서는 모자라지만 탑승자만이 아닌 주변 아군 진지를 보호하고 surgical하게 적 포대와 중화기 들을 제압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며 갑작스레 지상군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 전투에는 한국군이 개발한 XKD 가리온이 있었는데 실험기체로서 코스트를 고려하지 않고 생산한 가리온은 지상권에서 마하를 넘는 움직임을 선보이며 지상에서의 난수기동으로 각종 포격을 피하고 저지선-예비대-포대-사령부의 전술배치를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후방교란과 지원병력을 무효화시키면서 전선에서 투입된 병력의 수와 질을 압도를 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었다.
미군처럼 수십, 수백대를 단시간 내에 생산해내서 그걸 곧바로 투입할 기술력과 자금이 없었던 한국군의 이 때 사용된 가리온의 스펙을 좀 더 양산 가능하도록 개량하여 마침내
KD06 어둑시니의 양산에 성공하고 통합작전군 예하에 특수대응목적의 제 1 특수기갑여단을 창설하였다. 통합작전군에 수행하는 역할은 적 항공세력의 격멸 및 전투지원으로 노후화되기 시작한 공군이 이를 보조한다.
미군은 진행하고 있던 다비드 강화복+솔로몬 시스템,
아라크네+
워울프 패키지를 기본 골자로 하고 여단본부대에 기동대대형식으로 ACA 6대를 추가하는 형태로 육군의 범용성과 방어력, 기동성을 종합적으로 상승시켰다. 단위제대의 화력과 작전수행능력은 급격히 올라갔지만 그만큼 초기비용과 유지비용이 많이들어가게 되어서 상당수 사단을 감축하게 된다.
각국의 사정참조. 추가로 한국군과 다르게 항공전력은 이미 F-47, B-21, QF-36이 있기 때문에 이를 주력으로 사용하고 ACA를 보조로 사용하기로 한다. 때문에 항공전력으로의 기신을 단시간 내에 개발할 술법공학능력이 모자란 미국은 기술이전을 대가로 하여 어둑시니를 수입하여 사용하기로 한다.
이렇듯 실제로는 서로 다른 두가지의 타입의 기신이 있고 둘 사이에서의 우월비교는 그렇게 썩 훌륭한 비교가 못 된다. 서로간의 운용교리가 다르기 때문이긴한데 다만 기체에 적용된 초상학적인 스펙은 XKD쪽이 높고 기계나 무장의 비교를 하자면 XMD쪽이 더 좋다.